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초선대에서

기사승인 2020.07.01  13:35:10

공유
default_news_ad2

- 박선해

박선해

 

◈ 약 력

-김해문인협회 회원

 

천년 만년 영원하지만은 않는 이 약속의 터로 향기를 찾아 지역 문인협회 선배님들과 발길을 딯는다. 이 곳이 강이었음을 주변의 역사와 기나긴 흔적은 말한다. 정자 쉼터에는 표정으로 남긴 우물정자 천정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단번에 묘사하고 있다. 이은 터에서 맨발로 앉아 조상님께 우리 모두는 무엇으로 되짚어 가야 할지 고민을 해 보았다. 재조명하여 새 기록을 새겨 볼 지에 대해 읊조렸다.
초선대는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78호로 김해시 안동 소재로 안내 표지에는 기록되어 있다. 「신선을 초대한다는 뜻의 초선대는 현자를 청한다는 초현대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가락국의 거등왕이 칠정산의 선인을 초대하여 이곳에서 가야금과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왕이 앉은 연꽃 무늬 자리와 바둑판 자국이 남아 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어질 정도로 흔적이 미비하다.
오르는 길목을 잡는 관음보살에 어린 소리와 빛은 시간의 추가 흘러 나왔다. 고려시대 거불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과거를 불러 일으킬 주문은 생의 진했던 그림만이 이제는 희미해져 있었다. 그 깊은 마애불의 내력을 안내 표지판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돌담을 지나 덩쿨 풀들이 한창 초여름 분위기를 당기며 여인네들의 풍경사진 찍기에 관심을 불러 찰칵찰칵 잠시 살아 가는 재롱에 빠진다. 조금을 더 오르니 넓다란 평바위에 족한 사람들이 충분히 기댈만한 기둥바위와 만났다. 옛 전설은 선조들이 이 자그만 산기슭이 아름다워 신선을 초대하여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 한다. 그 기록은 이 글의  서두에 제시하였다. 시절엔 얼마나 풍류 자적하여 무릉도원처럼 풍경을 가진 곳 임을 알수 있다.
정각앞 거북 와등인가 싶은 돌바위에 새겨진 형상문자는 이즉토록 전설하나 풀어내지 않았음직한 숙제를 안았다. 언젠가 탁본으로라도 오래 묵어 뜻하는 의미의 깊은 한자를 연구해 봄직 하다. 평바위 왼발자욱은 거인이 살았다 하니 뱀이 기웃대며 호시탐탐 살아 있어 눈맞춰 웃음을 풀었다. 옛 역사나 전설은 참으로 괴이하고도 우스꽝 스럽기도 하며 때론 천년이 와도 교훈으로 살아 있기도 한데 앉아서 세월 덕담 삼아 넉넉하니 선배들의 글심을 훑어 낸다. 익히는 습이 수년에도 머리속은 발이 가는 행적에 어리 버리하다고 넋살을 털어 댄다. 그래도 무언가 남기자 맹세는 잃지 않고서다.
유유자적한 멋을 뒤로 하고 귀가를 채비한다. 바쁘고 바쁜 틈새의 하루를 이래저래 마음 곱게 다진다. 어둠이 어둑어둑 정자를 덮친다. 성급하다고 귀가를 재촉하는 밤달이 옆구리까지 찾아 든다. 정자나무 잎 자락자락 줄기 덩쿨 풀들도 햇살에 얌전하니 일찌감치 밤잠을 준비하더니 말이다.
오늘은 태극앞에 묵도하자 옷자락 여며 잡으며 나선 지역 탐방 기행이었다. 역사란 과거로 부터 미래를 짚어 내고 또다른 계발을 위한 기초 생태 구도의 초기 학문이다. 과거를 모르던 필자는 이 곳을 방문으로 설명을 듣기에 이르렀고 초선대의 50여년 전만해도 초목근피 탄탄하고 거대한 역사의 귀추가 되엇던 곳임을 충분히 짐작하나 지금은 시민의 눈밖으로 왜소한 쉼터에 불과한가를 느꼈다. 초선대, 어느 굿거리 신앙이 머물던 숨결을 타고 온다. 모자이크처럼 아물리는 꿈타래 열리는 날 올까!

초선대 전경.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ad37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