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 /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464p / 2만 5천 원
 

  1617년, 일본 히라도에 주재하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관원 리처드 콕스는 런던 본사에 통신문과 함께 인삼을 보냈다. 통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냅니다. 여기서 이 뿌리는 은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는데, 너무 귀해서 보통 사람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한국과 교류할 수 있는 쓰시마 번주에 의해 무조건 일본 천황에게 보내집니다. 이곳에서 이 뿌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합니다.” 인삼이 유럽에 상륙한 것을 증명하는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이다. 이후 유럽은 인삼의 효능과 매력에 빠졌고, 귀족들이 선물로 주고받았다.
 
연세대 사학과 설혜심 교수가 서양역사 속의 인삼을 연구한 것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저자는 1995년 여름에 미국의 한 쇼핑몰에서 ‘아메리칸 진생 페스티벌’을 보았다. 저자는 ‘미국인삼?’ 하면서 의구심을 가졌다. 시간이 흘러 2013년 겨울, 19세기 영국 소도시 지역신문 데이터베이스가 새로 구축됐다. 저자는 재미 삼아 ‘ginseng(인삼)+Corea(한국)’를 검색어로 입력했다. 무려 200개 넘는 기사가 검색됐다. 19세기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 발행된 신문에 한국 인삼을 다룬 기사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던 저자는 깜짝 놀랐다. “서양 사람들이 도대체 왜 19세기에 한국산 인삼에 대해 관심을 가졌단 말인가? 그런데 왜 역사서에는 한 줄도 다루지 않았던 것일까?” 서양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사학자로서의 오기가 발동했다. 신문기사, 식물학서, 지리지, 여행기, 편지, 시·소설, 영국의 동인도회사 보고서, 관세율 차트, 약전(藥典)과 본초학서, 미국인삼재배자협회 회의록에 이르기까지 한 줄이라도 인삼을 언급한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모았다. 그 결과 인삼이 17세기부터 동서양을 잇는 거대한 교역 네트워크에서 매우 중요한 상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삼이 전근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조공과 무역을 통해 유통됐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서양을 아우르는 인삼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사실은 서구 역사학계에서도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다. 저자가 서양역사 속의 인삼을 밝혀낸 것이다.
 인삼이 강장제로서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서양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은 1736년 프랑스 파리의과대학에서 나왔다. 뤼카 오귀스탱 폴리오 드 생바스가 쓴 <인삼, 병자들에게 강장제 역할을 하는가?>이다. 그 외에도 이 책은 많은 역사 사료를 바탕으로 인삼에 푹 빠졌던 서양을 보여준다.
 그런데 18세기 중반부터 서구 의학계에서 인삼의 의학적 가치를 폄하하고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서양은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동양의 의학적 전통에 기대어야 했던 것이 불편했다. 이 책에서는 서양이 인삼의 생산과 수출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에도 인삼을 ‘동양의 전유물’로 폄훼하고, 동아시아의 인삼 가공 기술에 대한 열등감을 오히려 인삼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씌우고, 주류 문화에서 인삼을 소외해간 과정을 추적한다. 서양 역사가 은폐했지만, 인삼은 동서양 교역의 슈퍼스타였다. 이 땅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인삼, 수 백 년 대대로 인삼을 재배해 온 이 땅 인삼농민들의 노고가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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