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구지봉에서 부른 민주노래

김종간 향토사학자.

구지봉과 구지가
 
‘구지가’ 혹은 ‘귀지가’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춤을 추고 있지만, 구야의 백성들이 동쪽에서 신라, 북쪽에서 고구려, 서쪽에서 백제가 창국한 것을 보고 출륭한 지도자를 찾아 통치자로 추대한, 민족사에 빛날 참 아름다운 ‘민주 가요’일 것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를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널리 알려진 구지가의 해석이다.

“나랏님 나랏님

대왕이 되소서.

만약에 않겠다면

구워서 먹으리.”

 구지봉은 백성들이 나랏님을 맞이한 곳이요 지도자로 추대 한 곳이다. 그래서 구지봉은 귀지봉이 아닌 구지봉으로 오래 불러왔고 지켜내려온 것이다.

 필자의 해석대로 구지가를 읊조려보며, 옛 선비들이 이곳 구지봉에서 부른 다른 노래를 찾아본다. 필자의 잘못으로 시인의 아름답고 큰 뜻이 훼손되었다면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

 

구지봉-허겸

궁연일록와귀형

진압방기오백령

전강파작광비물

고상삼산탁지령

 

활처럼 휘어진 산기슭에 누운 거북의 형체

나라의 터전, 오백년을 지켰네.

앞강에서 광주리에 잡히는 것이 두려워

삼산에 올라 땅의 영기에 의탁했구나.

 

 작가 허겸은 『김해읍지』 「음사(조상의 덕으로 한 벼슬)」조에 “수로왕의 음덕으로 장사랑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호는 나한,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그가 남긴 시로 ‘죽도 전함’ ‘타고봉’ ‘산해정’ 등이 있다.

 가락고도 김해의 회고 역사서 『김해읍지』는 필자에게 보물이자 스승이며 최고의 벗이다. 고장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어버이역사인 가야 또는 가락의 역사문화를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 가슴으로 전해주는 것은 「제영」편이었다. 제영 편에 실린 시를 따라 가야, 가락, 금관, 김해의 역사와 문화 경승을 만나본다.

 

구지석람-김건수

하사산유상엽귀

원간의시근간기

만래청애농여화

안득양공채필이

 

아래를 보면 농막같고 위를 보니 거북같아

소문으로 듣고 의심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기이하구나

늦게야 비 개이고 아지랑이 그림 같으니

훌륭한 화공 불러 붓으로 그려 옮길수 있을까.

 

 작가는 김건수이다. 정조 14년에 태어나 철종 5년 세상을 났다. 본관은 의성, 호는 만회로 순조 30년 정시문과의 을과에 급제하여 여러 직책을 거쳐 현풍현감을 지냈다. 현감 재직시 창녕, 청도, 양산 등 4군을 함께 다스렸는데 밀양포에 육로로 수송해 온 세미를 밀양 관리들이 농간을 부려 포탈하자 조정에 보고하여 민생의 안정을 도모한 덕을 기려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847년 지평을 거쳐 홍문관 응교를 지내고 1851년 5월 30일부터 1852년 7월 22일까지 김해부사를 지냈다. 승정원 우부승지를 역임했고 경연 때 임금에게 정치의 요체와 중농정책, 교육의 진흥 등에 관해 상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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