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맥주가 있었다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 · 유하 타흐바나이넨 지음, 이상원 · 장혜경 옮김 / 니케북스 / 304p / 1만 8천 원

 하루 종일 더위와 일에 지쳐 있다가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여름 저녁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맥주는 전 세계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맥주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맥주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는 법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 맥주에 관한 법조항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 108조에는 “술집 주인이 맥줏값으로 곡물 대신 더 많은 무게의 은을 받거나, 곡물 가치에 비해 적은 양의 맥주를 빚으면 잡아가 물에 던진다”고 적혀 있다. 그다음 조항인 109조에는 “자기 술집에 모여 음모를 꾸민 반역자들을 체포해 궁으로 데려가지 않은 술집 주인은 똑같이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맥주는 전쟁을 잠시 멈추게 하기도 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약 5개월이 지난 1914년 12월, 성탄절 무렵이었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이었지만, 이곳에서도 한 줄기 인간애의 불빛이 반짝였던 역사가 있었다. 총소리가 울리던 중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발사 중지! 맥주를 가져왔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한 한 전선에서 이 목소리와 더불어 잠시 비공식 휴전이 있었다고 한다. 비록 몇 시간 정도의 짧은 휴전이었지만, 영국과 독일의 양측 병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맥주를 함께 나눠 마셨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 그 때, 맥주가 있었다.

 맥주 때문에 생긴 재미있는 스포츠 역사도 있다. '푸르 드 프랑스'는 1903년에 창설된 프랑스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이다. 매년 7월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일주 사이클 대회이다. 1935년 대회에서 경기 중에 선수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승패가 갈리는 일이 발생한다. 경기 구간 중 17구간에서 생긴 일이다. 선수들은 길가에 놓여진 맥주테이블에 정신이 팔렸고, 그 맥주를 마셨다. (그 당시에는 경기 도중 맥주를 마시기도 했나보다.) 그때 프랑스 선수 쥘리앵 무아노는 아무도 모르게 선두 그룹에서 빠져나와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다른 선수들은 맥주를 마신 다음에도 윗옷 주머니에 맥주병을 챙겨 넣는 통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선수들은 시간을 더 허비했다. 집중력이 떨어져 자전거가 넘어지기도 했고, 핸들이 돌아가 프레임과 얽히기도 했다. 마침내 다른 선수들이 간신히 다시 달리기 시작했을 때, 무아노는 벌써 한참 앞서서 미친 듯이 페달을 밟는 중이었다. 모아노는 팬에게 음료를 얻어 마시고 점점 더 선두 그룹과 차이를 벌려 7시간 36분 30초 만에 결승선을 넘었습니다. 뒤따라오던 선두 그룹은 15분 33초 뒤에야 결승점에 도착했다. 1929년 이후 투르 드 프랑스 역사상 단일 구간 시간 격차 중 최대였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경기 중에 이런 일도 있었단다. '맥주의 힘'을 알 만 하다.

 맥주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와 역사를 읽다보면 맥주 생각이 간절해질지도 모른다. 미카 리싸넨, 유하 타흐바나이넨 두 사람은 역사학자이다. 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에서 맥주가 없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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