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라이벌 / 김재훈 지음 / 아트북스 / 319p / 1만 7천 원

 

 훌륭한 라이벌처럼 좋은 자극은 없다. 같은 분야에서 서로 맞수가 되어 경쟁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인정받고, 또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훌륭한 라이벌이란 그런 사람이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작가로 활동하는 김재훈 씨가 순수예술, 대중문화, 클래식까지 망라해 20세기와 21세기 문화를 꽃피워낸 영웅들을 소개한다. 그 영웅들에게는 어떤 라이벌이 있었는지, 그들의 경쟁이 어떻게 찬란한 인류 문화를 꽃피웠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세기의 아이콘으로 보는 컬처 트렌드'이다. 책 표지가 아주 재미있다. 수퍼맨과 배트맨이 대치하고 있다. 이 둘은 실제인물이 아니라 만화 캐릭터이지만 영화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영웅이고, 각자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라이벌이다.

 책에는 모두 67쌍의 라이벌이 등장한다. '20세기 공인 요정 오드리 헵번 대 대중의 아프로디테 메릴린 먼로'를 보자. 세기의 두 여배우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오드리 헵번이 만인으로부터 사랑받기에 적합한 이미지였다면, 메릴린 먼로는 산업화와 욕망의 시대에 갈채를 얻기 위해 편견과 왜곡된 시선도 함께 견뎌야 했던 질곡의 여인이었다.

 밴드의 전설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여성복을 혁명한 샤넬과 여성에게 예술을 입힌 이브 생로랑, 할리우드 감독들이 보배라고 부르는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과 영화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엔니오 모리코네 등. 이들은 서로에게 훌륭한 라이벌이 되어주었다. 이들은 각기 동시대의 문화를 공유했고, 서로 경쟁하는 동안 훌륭한 작업들을 했고, 그 결과로 아름다운 인류 문화상 아름다운 창조물들을 탄생시켰다.

 가상의 인물도 있고, 책이나 디자인도 라이벌이다. 셜록 홈스와 아르센 뤼팽, 스포츠 브랜드의 양대 산맥인 아디다스와 나이키, 독일의 국민차 비틀과 영국 대중을 위한 차 미니,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라이벌이다. 저자는 잡지 <샘터>와 <뿌리깊은 나무>도 라이벌로 보았다. <샘터>는 우리 나라 교양잡지의 전설이다. 작고 가볍고, 가격도 저렴하고,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잡지다. 그리고 <뿌리깊은 나무>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술, 전통의 가치 등을 통해 독자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주었던 고급 문화지였다. 다루는 기사들의 분야는 달랐지만, 독자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될 만큼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라이벌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문화를 정원에 피는 꽃과 같다고 말한다. 딱히 먹을 양식을 마련하거나 내다 팔기 위해 꽃을 심는 것이 아니라, 생업과는 별도로 삶을 충전하려고 꽃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꽃이 상품이 되었고, 그 순수한 희망과 기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시간 동안 가장 화려하게 피었던 꽃들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류역사에 남을 만큼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던 유명한 사례들을 라이벌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을 썼다. 또한 각 라이벌을 캐리커처로 그리고 있어서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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