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전 약속 / 이진숙 지음 / 북인 / 213p / 1만 3천 원

“김해에서 땅을 파면 그 속에서 뭐가 나올지 겁난다.” 이런 말을 들어 본 적도 있고, 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금관가야의 왕도였던 김해의 땅에 무엇이 잠자고 있을까. 가끔씩 유적이 발굴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뿌듯하다. 까마득한 고대 가야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신기하다. 발굴된 유적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토기를 보면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술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상상해보는 순간, 시공간을 훌쩍 넘어 가야로 가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이진숙의 소설 '700년 전 약속'을 보면서 가야와 현대의 김해가 이어지는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0년 전 약속'은 전남 신안 앞바다의 해저 유물 발굴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75년 1월, 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도덕도 앞 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가 걸려 바다 위로 올라왔다. 그 이전에도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도자기는 더러 있었지만, 청자는 예사롭지 않았다. 어부의 아들인 교사가 그 청자를 관청에 신고했다. 청자가 발견된 바다 속으로 내려가 조사를 했더니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 원나라 시대의 배가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가려는 항해 도중 침몰했던 것이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바다 속 유물을 발굴 인양 작업이 진행됐다.
 
 소설의 프롤로그과 에필로그는 원나라에서 배를 타고 고려를 향해 가는 남편,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고려 공녀 출신의 아내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설의 주요 이야기는 시루섬에서 선박 형태로 지어진 카페의 여주인 '도화'와 딸 '채목', 중국에서 온 한 남성 '쾌영'을 중심으로 엮어진다. 증도를 진도로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설에서는 옛 지명인 '시루섬'을 썼다.
 
 고려 공녀의 먼 후손인 쾌영은 선조의 흔적을 찾아 신안해저유물에 관심을 가지고 시루섬을 찾아온다. 유물이 발굴되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카페 여주인 도화의 회상으로 이어진다. 10년에 가까운 발굴기간 동안 섬 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은 컸다. 어업이 중단돼 생업을 이어가지 못하자 섬을 떠나 이주한 사람, 도굴의 누명을 쓴 사람, 도굴꾼의 꾀임에 빠져 바다 속으로 잠수를 했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도 있었다. 세상이 유물 발굴 보도로 시끄러운 동안 섬은 상처를 입었다. 지난 일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쾌영과 도화 사이에서는 천천히 사랑의 감정이 생겨난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남편이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던 고려 공녀의 사랑이 70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진숙 작가는 고향인 신안 증도를 사랑했고, 고향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 우연이긴 하지만 이진숙 작가는 계속 '신안'에서 살았다. 전남 신안 증도에서 태어났고, 고향을 떠나 김해에서 살 때는 장유 신안마을에서 살았고, 현재는 산청군 신안에서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났지만, 여전히 이진숙은 '신안'이라는 익숙한 지명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고향은 많은 역사를 켜켜이 가지고 있는 땅이다. 김해에는 어떤 역사가 쌓여있을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 한 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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